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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慶尙義兵陣의 安東戰鬪

義兵抗爭史 ■ 23.慶尙義兵陣의 安東戰鬪 경상도의 의병 봉기는 먼저 퇴계 [李滉]과 서예 [유성용]의 고향이요 儒林의 중심지로 알려진 安東地方에서 일어났다. ☞1896년 1월 17일, 안동의 儒生들은 단발령 직후 儒生 [郭鐘錫]. 都事 [金道和]. 持平 [金興洛]等 223명이 향년 60세의 [權世淵]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통문을 돌려 倡義를 외치니 [안동 의병진]은 10여 일 만에 그 수가 4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1월 28일, 의병 봉기로 도망갔던 安東觀察使 [金奭中]이 친위대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오니 급조되고 훈련이 미숙한 의병들이 감당해 내지 못하여 사방으로 흩어지고 [權世淵]은 2개월 만에 의병장직에서 물러나고 만다. 하지만 오랫동안 抗日思想으로 뭉쳐있던 이지방 인사들의 氣槪는 꺾이지 않았다...

義兵抗爭史 2020.04.21

■ 21-3.[柳麟錫]의 忠州城戰鬪와 西北移動

義兵抗爭史 ■ 21-3. [柳麟錫]의 忠州城戰鬪와 西北移動 충주성을 장악한 지 18일째인 ☞3월 5일, 호좌 의병은 일본군과 친일 관군의 양면 공격을 받고 식량과 탄약 부족으로 고생하였다. 이에 의병장 [유인석]은 입성한 지 18일 만에 제천으로의 퇴각을 결정, 깊은 밤을 틈타 은밀히 충주성을 빠져나와 내주-淸風을 거쳐 堤川城으로 후퇴하였다. ☞4월 23일, 앞서 남한산성 공방전에서 의병진을 격파한 서울 관군과 왜군은 호서 의병의 남하를 서서히 추격하면서 지역 내 적군과 합세하니 戰雲은 짙어지게 된다. 하여, 관군은 신무기와 대병력으로 제천 성을 4면 포위 총공세를 가해 오니 ☞5월 23일, 제천 성이 피탈되고 만다. ☞7월 11일, [유인석]은 제천 성을 빠져나와 영월-평창-강릉을 지나 大和에 도착하니..

義兵抗爭史 2020.04.20

■ 21-2.[柳麟錫]의 忠州城戰鬪와 西北移動

義兵抗爭史 ■ 21-2. [柳麟錫]의 忠州城戰鬪와 西北移動 충주는 중부권의 20여 개 고을을 관할하는 전략적 요충지라는 지리적 특징도 있었지만 당시 충주 관찰사 [김규식]은 친일개화파 [박영효]의 지시로 단발령을 비롯한 개화 정책을 주도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柳麟錫] 의병대장은 충주성을 1목표로 공격, 이를 장악 함으로써 서울로 나가는 거점을 확보하여 청일전쟁 때 부산에서 서울까지 설치하였던 일본군의 통신선을 차단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 호좌 의병은 2월 16일 출진하여 그날 院西에서 1 泊 하고 ☞2월 17일,북한강 상류 북창 나루를 건너 곧바로 忠州府를 공격하였다. 관군과 왜군은 문루에 올라 최후의 저항을 하였지만 치열한 공방전 끝에 충주성을 함락하였다. 하여, 충주관찰사 [김규식]은 관..

義兵抗爭史 2020.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