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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정문부]의길주장평 전투

義兵抗爭史 ■11. [정문부]의 길주 장평 전투 의병대장 [정문부]는 임진년 9월 16일 경성전투에서 적을 격파하고 반적 [국경인]과 [정말수]를 처단하고 경성지역을 안정시키자 [韓仁濟] 等 여러 장수가 호응하여 병력이 수천명에 달하게 되었다. 하여 [李應星]에게 군사 700명을 주어 鏡城을 지키게 하고 10월 21일, [정문부]는 군사 1,000여 명을 이끌고 明川으로 나아가 陣을 치니 길주목사 [鄭熙績]과 輸城察訪 [崔東望]이 1,000여명 병력을 이끌고 합세했다. 왜적은 吉州城內에 1,00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고, 300명의 군사는 길주 남쪽 80리 거리인 嶺東館 柵城을 지키게 하였는데 이들은 10명에서 100명씩 떼지어 다니며 나무도 베고 사방 촌가에 약탈과 살상 등 횡포가 극심하였다. [정문부..

義兵抗爭史 2020.04.15

■10.[鄭文孚]의 鏡城戰鬪

義兵抗爭史 ■10. [鄭文孚]의 鏡城戰鬪 敵將 [加藤淸正]은 군사를 길주 이남에만 배치한 후, 鏡城에는 叛賊 [鞠世弼]을, 會寧에는 叛賊 [鞠景仁] 等을 배치하여 군민의 행정을 統轄하게 하고 자신은 豆滿江邊에서 安邊으로 돌아갔다. [鄭文孚]는 오랫동안 경성 유생인 [池達源]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池達源]은 [鄭文孚]와 봉기하기로 하고 의병을 모집하기 시작했는 데수일만에 前 萬戶 [姜文佑]를 비롯하여 향병 수백 명을 모집하였고 또 산중에 숨어 있던 鐘城府使 [鄭見龍]과 慶源府使 [吳應대] 等이호응해 왔다. 임진년 9월 15일, 의병장 [鄭文孚]는 義兵旗를 세우고 鏡城의 叛賊 [鞠世弼]을 공격하게 되었다. 왜적으로 부터 兵使로 임명되어 鏡城을 지키고 있던 [鞠世弼]은 의병들의 기습공격에 당황하여 성문을..

義兵抗爭史 2020.04.15

■ 9. 二次 錦山城 戰鬪

義兵抗爭史 ■ 9. 二次 錦山城 戰鬪 1592년 7월 10일에 있었던 1次 錦山戰鬪에서 [高敬命]의 의병대와 관군의 연합부대가 錦山城의 탈환을 시도하였다가 潰滅되었었고 이후로 몇몇 의병대와 조선관군이 성의 탈환을 시도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8월 1일, 淸州에서 [히치 스카 이에마사]가 지휘하는 倭 第5軍 後方部隊를 격파하여 淸州城을 탈환한 義兵將 [趙憲]과 僧兵長 [영규], 그들의 다음 목표는 조선군이 번번이 탈환에 실패한 錦山城이었다 금산성에 주둔하고 있는 [고바야카]와 [다카 카케]의 왜5군은 1만 명, 거기다 왜5군은 그간 전라도의 침공을 여러 번 시도하여 조선군과의 전투 경험도 여러번 쌓은 상대하기 버거운 적이었다. [趙憲]과 [영규]의 연합부대는 의병 1,000여명과 승병 800여 명으로 ..

義兵抗爭史 202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