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司馬穰苴 [兵法家들] ■ 33.司馬穰苴 落第生인 孔子는 司馬穰苴의 찬란한 成功과는 달리 齊나라에서 登龍되지 못하자 여러나라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그를 採用해 주는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孔子는 가는 곳마다 面接에서 落第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때 孔子는 서글픈 流浪을 繼續하면서 저 너른 .. 兵 法 2011.11.23
■32.司馬穰苴 [兵法家들] ■ 32.司馬穰苴 齊나라의 國祖인 姜太公의 王道는 官子에 이르러 覇道가 되고, 晏子에 이르러 富國强兵策이 되었다가, 다시 田氏에 이르러 司馬法이 되어 점점 그 Scale이 작아졌지만, 그래도 田氏는 司馬法에 依해 賢明한 人士를 尊敬하고 國王도 學文과 眞理앞에서는 무릎을 .. 兵 法 2011.11.22
■31.司馬穰苴 [兵法家들] ■ 31.司馬穰苴 司馬穰苴 는 齊나라를 求한 功臣이요 道德家로 한 貴族에 滿足하고 一國에 忠誠을 다 바쳤다. 그러나 그 子孫은 王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은 國賊이었다. 穰苴 로서는 兵法의 惡用이 이와 같은 不義를 가져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같이 .. 兵 法 2011.09.03
■ 30.司馬穰苴 [兵法家들] ■ 30.司馬穰苴 威王은 王位에 오르자 祖上의 司馬兵法에 의해 나라를 잘 다스려 그 國威를 널리 떨쳐 이웃 여러 나라를 制壓하여 覇者가 된 名君이다. 또 威王은 大臣들에게 분부하여 古代로부터 전해 오는 司馬法을 硏究 檢討케 하는 한편 祖上인 司馬穰苴가 지은 兵法을 첨.. 兵 法 2011.03.11
■ 29.司馬穰苴 [兵法家들] ■ 29.司馬穰苴 이렇게 하여 제나라는 양저에 의해 구제되었지만 후에 또 양저에 의해 제나라가 망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물론 戰功은 후하게 시상해야 하지만 이것이 지나쳤을 경우에는 큰 화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B.C.481년, 양저의 자손으로써 제나라의 대신이었던 .. 兵 法 2011.03.11
■ 28.司馬穰苴 [兵法家들] ■ 28.司馬穰苴 吳子는 그의 著書에서 싸워서 이기기는 쉽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기는 어렵다. 天下에 戰爭을 하는 나라는 다섯번 勝利한 者는 그 나라가 亡하고 네번 勝利한 者는 그 나라가 披廢하고 세번 勝利한 者는 覇者가 되며 두번 勝利한 者는 王이 되고 한번만 이기는 .. 兵 法 2011.03.11
■ 27.司馬穰苴 [兵法家들] ■ 27.司馬穰苴 太公望은 全勝을 文伐이라 말하고 있다. 文伐이란 文으로써 敵을 치는 法 즉 武力을 行事하지 않고 文德으로 敵을 征閥하는 法을 뜻하는 것이다. 손자는 그의 병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전쟁에 있어서는 적국을 온전하게 두고 이를 굴복시키는 것이 최.. 兵 法 2011.03.11
■ 26.司馬穰苴 [兵法家들] ■ 26.司馬穰苴 이 소식을 들은 晉과 燕 두 나라의 침략군은 곧 전군에 명령을 내려 총퇴각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양저 장군과 침략군사이에 벌어질 신나는 대혈전을 기대하였다가 전쟁의 결과가 싱겁게 끝나 자못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러나 여기에 司馬兵法의 眞髓.. 兵 法 2011.03.10
■ 25.司馬穰苴 [兵法家들] ■ 25.司馬穰苴 이렇게 하여 3일이 지나자 제나라 군대는 면목을 일신하여 전혀 다른 군대처럼 되었고 군사들의 사기는 갑자기 하늘을 찌를 듯하여 심지어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는 병사까지도 떨쳐 일어나 종군하기를 자원했을 정도로 전투의욕은 불길처럼 솟이올라 그들 앞.. 兵 法 2011.03.10
■ 24.司馬穰苴 [兵法家들] ■ 24.司馬穰苴 새로 임명된 장군 양저는 전군에 새로운 기풍을 일으켰다. 장병들의 급식에서 휴식에 이르기까지 용이주도하게 보살폈다. 병사 가운데 환자가 생기면 그는 몸소 찾아가 위로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게 했다. 종전과 같은 장교의 특별요리를 폐지시키고 대장으로.. 兵 法 201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