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 離 別 (56) ■ 離 別 그러면 분부하시는 대로 순종하겠아오나 차고 계시는 그 보검만 妾에게 빌려 주시기 바랍니다. 妾이 男服으로 가장하고 폐하의 뒤를 따르려 하옵니다. 그래 그러면 이 칼을 줄 것이니 따라올 수 있는 데까지 따라 오기 바란다. 項羽는 내키지 않았으나 허리에서 칼을 끌러 虞姬.. 司馬遷의 史記 2010.02.16
55.■ 離 別 (55) ■ 離 別 虞姬는 꿇어 앉아 項羽의 가슴을 안고 "폐하! 폐하!"하며 項羽의 몸을 흔드니 그제야 項羽는 눈물에 젖은 눈을 크게 뜨고 虞姬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虞姬의 눈에서도 진주알 같은 눈물방울이 아릿다운 두 뺨으로 흘러 내렸다. 폐하! 첩이 폐하를 모시고 5~6年을 폐하의 곁에서 떠.. 司馬遷의 史記 2010.02.16
54.■ 離別 (54) ■ 離 別 B.C. 202年, 안휘성 영벽현 "垓下" 지역의 싸움에서 劉邦의 名參謀인 張良과 大將軍 韓信이 쳐둔 10面 매복에 걸려들은 項羽는 四面楚歌로 事態의 심각성을 직감하고 술잔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垓下歌"를 부르게 된다. *** 垓 下 歌 *** 力拔山兮 氣盖世 : 힘은 산을 뽑고 기백은 세.. 司馬遷의 史記 2010.02.16
53.■ 四面楚歌 (53) ■ 四面楚歌 漢王 劉邦과 楚覇王 項羽는 광무산의 계곡을 사이에 두고 지루하게 대치하면서 項羽는 1 : 1의 對決을 강요하는 데 반하여, 劉邦은 項羽의 罪上을 일일이 떠들어 댔다. 그러던 어느날 劉邦은 張良을 불러 意見을 물었다. 韓信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소. 어인 일이오? 張良은 .. 司馬遷의 史記 2010.02.15
52. ■ 韓信의 策士 괴철 (52) ■ 韓信의 策士 괴철 劉邦과 項羽의 전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項羽가 차차 不利해 지고 있을 때 項羽의 막빈으로 있던 武涉(무섭)이 項羽를 찾아와 韓信에게 은밀히 사자로 갈 것을 自請한다. 당시 韓信은 劉邦의 本陣에 있지 않고 齊나라 쪽의 戰鬪에서 막 勝利하고 있었던 터였는데.. 司馬遷의 史記 2010.02.15
51.■ 韓信의 背水陣 (51) ■ 韓信의 背水陣 孫子 九地編에 投之亡地然後存: 군사들은 싸움에 지면 망해 없어질 땅으로 내더진 뒤라야 스스로를 지켜 남고 陷之死地然後生:죽을 곳에 빠뜨려진 뒤라야 힘 다해 스스로 살아난다. 夫衆陷於害然後能以勝敗:무릇 군사들이란 위태롭고 해로운 곳에 빠지게 한 뒤에야 승.. 司馬遷의 史記 2010.02.15
50. ■ 韓信의 背水陣 (50) ■ 韓信의 背水陣 한편, 韓 信은 手下 將帥들에게 令을 내린다. 前衛軍은 敵軍이 기다리고 있는 30리 밖에서 2 千의 기마군에게 붉은 깃발을 야음을 이용하여 浸投하였다가 本陣이 趙軍을 공격할 때 趙軍의 本陣 地域에 붉은 깃발로 뒤덮도록 하라. 精銳 1 萬 軍은 夜陰을 틈타 2 千 기마군.. 司馬遷의 史記 2010.02.15
49. ■ 韓信의 背水陣 (49) ■ 韓信의 背水陣 B.C. 204년 9月 下旬, 韓信은 3 萬 軍으로 魏나라를 평정하고 이어 代땅과 趙나라의 진여를 사로잡고 이어 燕나라 齊나라를 아우러는 劉邦의 東北方을 平安케 한 後, 軍士를 돌려 楚의 糧道를 끝어 項羽의 西進을 막겠다는 글을 올리게 된다. 이에 劉邦은 趙나라 事情에 밝.. 司馬遷의 史記 2010.02.14
48. 司馬遷의 史記(48) 司馬遷의 史記(48) 원 생 경포를 포섭한 劉邦은 형양을 떠나 關中의 本據地로 돌아가 軍을 再編成하여 즉시 東쪽 형양으로 나아가려는 참이었다. 이때 "원생"이 建議 하기를 형양을 中心으로한 攻防戰은 이미 수년에 걸쳤고 그동안 우리나라는 줄곧 苦戰을 치러 왔습니다. 이번에는 戰略을 바꾸어 南쪽.. 司馬遷의 史記 2010.02.14
47. ■ 수 하(47) ■ 수 하 劉邦은 項羽에게 退敗하여 형양까지 쫓겨와 푸념한다. 도대체 믿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이런 사람들과는 天下의 큰 일을 이야기해 봤자 헛수고란 말이야. 회남의 구강왕 경포를 설득하여 楚나라에 反旗를 들도록 사주 하여 反亂을 일어키고 또한 앞으로 몇달 동안만 더 齊.. 司馬遷의 史記 2010.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