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季布 와 大俠 "朱家" (66) ■ 季布 와 大俠 "朱家" 두 사람은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 주거니 받거니를 하다가 朱家가 하후영에게 물었다. 주가 : 季布가 무슨 큰 罪를 지었기에 황상께서 저토록 큰 賞을 걸고 急하게 그를 찾고 계십니까? 무릇 남의 臣下된 자는 각기 자신이 임금으로 섬기는 이에게 忠誠을 다해야 합.. 司馬遷의 史記 2010.02.17
65. ■ 季布 와 大俠 "朱家" (65) ■ 季布 와 大俠 "朱家" 周氏는 義理의 사나이 季布를 살리려면 魯나라에 大俠으로 널리 알려진 朱家에게로 보내는 方法 밖에 없다고 生覺하여 季布를 머리를 깎고 奴隸(노예)로 가장시켜 朱家에게로 갔다. 朱家는 한눈에 項羽 揮下의 盟將 季布임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고 季布를 .. 司馬遷의 史記 2010.02.17
64. ■ 季布 와 大俠 "朱家" (64) ■ 季布 와 大俠 "朱家" 楚나라 사람인 季布는 項羽 揮下에서 勇盟性으로 이름을 크게 떨쳤다. 巨鹿大戰,彭城大戰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중에 英雄的 자태를 과시하였고 전투를 벌일 때마다 그는 항상 선봉장이 되어 적의 將帥를 죽이고 將帥의 깃발을 빼앗아 오는 등 전설적인 .. 司馬遷의 史記 2010.02.17
63. ■ 皇 帝 의 拜 賀 式 (63) ■ 皇 帝 의 拜 賀 式 폐하께서 天下를 얻어신 것은 文.武 모든 臣下들이 强.弱.親.蔬 할 것 없이 모두 다 忠誠을 바쳐 일심 協力했던 까닭이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보니 親하고 가까운 사람은 봉작을 주시고 미워하던 사람은 죽음을 주신고로 저 사람들은 不平하며 모반할 의논을 하는 .. 司馬遷의 史記 2010.02.16
62. ■ 皇 帝 의 拜 賀 式 (62) ■ 皇 帝 의 拜 賀 式 B.C. 202년, 劉邦은 皇帝에 올라 拜賀式을 擧行한 자리에서 張良, 韓信, 왕릉 等 논공행상을 봉하면서 白馬를 죽여 그 피를 나눠 마시며 서로 永遠히 배반하지 말것을 盟誓하였다고 하는데...,,,,, 이때 사용된 말은 項羽가 타고다니던 愛馬 趨(추)였다고 傳해지며 斬馬하.. 司馬遷의 史記 2010.02.16
61. ■ 項羽에 대한 評價(61) ■ 項羽에 대한 評價 司馬遷은 史記에 項羽의 죽음을 두고 이렇게 쓰고 있다. 項羽는 쳐부수고 이긴 功을 스스로 자랑하며 사사로운 智慧를 내세워, 옛것을 스승 삼지 아니하고 覇王의 功業만을 일컬었다. 힘을 써 정벌하는 것으로 天下를 經營하려 하다가 5年 만에 마침내 나라를 亡하게.. 司馬遷의 史記 2010.02.16
60.■ 楚覇王 項羽의 最後 (60) ■ 楚覇王 項羽의 最後 그 때 劉邦의 추격대장인 "여마통"이 달려오자 項羽는 옛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 그에게 호탕하게 말했다. 내가 들어니 漢王은 내 머리를 千金의 賞과 萬戶의 邑으로 사려 한다고 하였다. 이제 지난날 알고 지내던 情으로 그대에게 恩德을 베풀 터이니 이 머리를 .. 司馬遷의 史記 2010.02.16
59. ■ 楚覇王 項羽의 最後 (59) ■ 楚覇王 項羽의 最後 이때만 해도 覇王은 再起의 의욕으로 고양되어 있었으나 再起의 발판이 될 江東에 소홀했음을 스스로 뉘우치며 江東사람들에게 지난 잘못을 비는 여유까지 보였다. 지난날 劉邦이 그토록 내게 몰리면서도 왜 그리 關中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지 이제 알 만도 하.. 司馬遷의 史記 2010.02.16
58. ■ 垓下(58) ■ 垓下 B.C. 202년,項羽는 手下의 將卒들이 모두 죽고 그가 사랑하던 虞姬마져 끔찍하게 自殺한 터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自己를 따르는 800騎만 끌고 漢나라 낭중 騎兵 5千의 追擊을 받으며 오강나루에까지 내달렸다. 오강 나루에 이르러니 자기를 보호해 오던 주란과 환초도 죽고 남.. 司馬遷의 史記 2010.02.16
57. ■ 離 別(57) ■ 離 別 司馬遷의 史記에는 <項王이 몇차례 노래하자 虞美人도 和答하여 노래하였다. 項王의 눈에서 몇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니 함께 있던 사람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차마 바라보지 못하였다> 라고 記錄되어 있을 뿐 그 뒤 虞美人이 어찌 되었는지는 記錄되어 있지 않다. 虞姬의 墓.. 司馬遷의 史記 2010.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