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司馬遷의 史記(16) 司馬遷의 史記(16) 項羽 擧兵하다 先手치면 남을 제압하고, 뒤지면 남에게 제압 당한다 던 "殷通"은, 오히려 상대에게 선수를 뺏겨버린 것이다. 이렇게 하여 "項羽"는 강동의 회계군을 본거지로 하여 反旗를 높이 쳐들게 된다. 이 무렵, 광릉에서는 召平이 陳勝에 호응하여 거병하였는데, 그가 광릉을 완.. 司馬遷의 史記 2010.02.09
15. 司馬遷의 史記(15) 司馬遷의 史記(15) 先手를 쳐야 남을 制壓한다 B.C. 209년 9월, 강동의 회계 군수 殷通은 陳勝과 吳廣이 농민군을 모아 세력을 구축, 수도 함양을 향해 진격해 갈 무렵, 殷通도 時代의 흐름을 간파하고 이에 호응하려고 項良을 불러 상의 하게 된다. 殷通은 項良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강서지방에서는 .. 司馬遷의 史記 2010.02.09
14. 司馬遷의 史記(14) 司馬遷의 史記(14) 世界 最初의 農民봉기 이 "陳勝"이 진나라 2세 황제 때, 농민 900名과 함께 징용되어 만리장성 경비를 맡기 위해가고 있었는데, 도중에 장마가 들어 기한내에 도저히 목적지까지 가지 못할 것 같았다. 당시의 법은 어찌나 엄하였던지 만약 기한내 가지 못하게 되면 바로 처형이었다. 하.. 司馬遷의 史記 2010.02.09
13.■ 燕雀安知,鴻鵠之志哉 ■ 燕雀安知,鴻鵠之志哉 양성 출신의 "陳勝(진승)" 그는 젊었을 때 매우 가난하여 날품팔이 일꾼 생활을 하였는데, 어느날, 남의 집 밭에서 밭을 갈다가 연장을 내던지고 언덕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었다. 그의 가슴속엔 진나라의 폭정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가엾은 신세를 탓하는 .. 司馬遷의 史記 2010.02.09
12. 司馬遷의 史記(12) 司馬遷의 史記(12) 秦나라 滅亡 이 일이 있은 뒤 어떤 사람이 상림원을 지나다가 皇帝가 쏜 화살에 맞아 죽은 사건을 기화로,趙高는 皇帝를 협박하여 皇帝의 居處를 함양에서 동남쪽 8리나 떨어진 望夷宮으로 옮기도록 조치한다. 그런 다음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을 하나하나 죄를 씌워 죽이니 그의 말.. 司馬遷의 史記 2010.02.09
11. 司馬遷의 史記(11) 司馬遷의 史記(11) 秦나라는 패망의 길로 빠져들고... B.C. 208년(2세황제 3년), 趙高가 승상이 되고 李斯가 죽임을 당한 것은 이 해 겨울의 일이었다. 秦나라 장수 장한 등이 거느리는 군사는 黃河의 북쪽 거록을 포위했으나 楚나라의 상장군 項羽의 공격을 받아 포위망이 무너졌다. 장한 군.. 司馬遷의 史記 2010.02.09
10. 司馬遷의 史記(10) 司馬遷의 史記(10) 이빨에 걸 것도 못된다 陳勝과 吳廣이 농민군을 이끌고 秦나라에 반기를 들었을 때, 이 보고를 받은 秦나라 2세황제 胡亥는 박사 30 여명을 모아놓고 대책을 숙의하는 자리에서 모두가 이는 반역자로 규정하면서 당장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황제는 반역이라고 하면 어쩐.. 司馬遷의 史記 2010.02.08
9. 司馬遷의 史記(9) 司馬遷의 史記(9) 李 斯 와 韓非子 秦始皇이 韓非子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본 李斯는 아무 생각없이 자랑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이 책을 저술한 사람은 韓나라 公子 韓非인데, 그는 臣과 同門입니다. 오, 그런가? 당장 韓나라를 공격하시오!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韓非子를 볼 수 있을 것 아.. 司馬遷의 史記 2010.02.08
8. 司馬遷의 史記(8) 司馬遷의 史記(8) 李 斯 와 韓非子 李斯는 조작된 반역죄로 趙高에 의하여 四枝가 찢기는 오형으로 비참한 최후를 마쳤지만, 李斯 또한 同門修學한 韓非子를 아무 罪도 없이 毒酒로 죽였다. 李斯와 韓非子는 荀子의 제자로 同門修學하였다. 韓非子의 思想은 한마디로 철저한 "法의 政治"였다. 그는 刑.. 司馬遷의 史記 2010.02.08
1. 司馬遷의 史記 (序幕) 司馬遷의 史記(序幕) 歷史의 魂 司馬遷 中國이 자랑하는 司馬遷이 살은 年代는 漢武帝 때이다. 漢武帝는 50餘年 帝位 기간중 國家 統一을 완성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한편, 변경을 개척하고 대외 관계를 확장하여 국력을 크게 신장시킴으로써 中國 歷史上 名君으로 꼽는 임금이다. 그런 그가 전쟁.. 司馬遷의 史記 2010.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