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 陳 倉(진 창)(34) ■ 陳 倉(진 창) 때는 B.C. 206년 8월, 漢王 유방은 咸陽을 버리고 팽성으로 향하는 항우의 좁은 識見을 볼때 天下를 경영할 人材가 아니라는 것에 실망하고 한신을 대장군으로 봉하여 천하 쟁패길에 나서게 된다. 韓信은 劉邦의 실세인 번쾌로 하여금 500명의 군사를 주어 불태웠던 잔도를 .. 司馬遷의 史記 2010.02.12
33. 司馬遷의 史記(33) 司馬遷의 史記(33) 劉 邦,東쪽을 바라보다 劉邦도 자신의 영지를 향해 출발했다. 이때 項羽는 劉邦에게 병력 3만을 허락했는데 지원한 군사들은 그의 관동의 동쪽 병사들이었다. 劉邦은 한중으로 들어가면서 계곡지대의 식중에서 부터 그들이 지난 뒤에 잔도를 모두 불태워버렸다. 이는 병사들이 도망.. 司馬遷의 史記 2010.02.12
32. ■ 錦 衣 夜行(32) ■ 錦 衣 夜行 項羽가 咸陽을 뒤로한 채 팽성으로 떠난다는 말을 들은 新豊 부근의 "韓生"이라는 유세가가 項羽를 찾아가 말했다. 大王께서는 어찌하여 咸陽을 버리고 이리로 다시 돌아오셨습니까?" 나는 장차 東쪽으로 돌아가 祖上 때부터 살아온 西楚 땅에 자리잡으려 한다. 大王께서 .. 司馬遷의 史記 2010.02.12
31. ■ 錦 衣 夜行 ■ 錦 衣 夜行 B.C. 206年 5月, 項羽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戰功과 막강한 實力을 바탕으로 스스로 西楚覇王이라 칭하고 또 楚 懷王을 義帝로 옹립한 다음 18名의 諸侯를 王으로 봉한다. 楚覇王 項羽는 자기의 라이벌로 생각하든 劉邦을 西쪽 멀리 변두리 땅 파촉 漢王으로 봉하고 다시.. 司馬遷의 史記 2010.02.12
30.■ 虞 姬 ■ 虞 姬 項羽는 鴻門宴이 있은 며칠 뒤 군사를 몰아 咸陽으로 들어갔다. 楚覇王 項羽는 秦나라 主力 군사들과 싸우면서 악전고투를 거듭해 오는 동안에 거칠어지고 뒤틀린 정서는 처음부터 관용이나 연민과는 멀었다. 項羽는 항복한 秦나라의 마지막 임금 자영(子瓔)부터 끌어내 죽이는.. 司馬遷의 史記 2010.02.12
29. 司馬遷의 史記(29) 司馬遷의 史記(29) 鴻 門 宴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감을 눈치 챈 張良은 밖으로 나와 번쾌를 불러냈다. 번쾌는 머리카락을 곤두세우고 눈알을 부릅뜨며 방패를 들고 宴會場으로 뛰어들었다. 번쾌는 項羽가 건네준 술잔을 단숨에 들이키고,돼지의 날고기를 칼로 베어 먹었다.항우가 한잔 더 하겠느냐고 .. 司馬遷의 史記 2010.02.12
28. 司馬遷의 史記(28) 司馬遷의 史記(28) 鴻 門 宴 項羽는 성을 내며 즉각 劉邦軍을 공격 할려다가 모사 范增의 計策에 따라 計略으로 劉邦을 제거하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項羽의 숙부, 항백은 전부터 張良과 親睦이 두터웠으므로 저녁에 몰래 劉邦의 陣地를 찾아 간다. 項羽의 숙부 항백은 張良에게, "여기 있으면 위험하.. 司馬遷의 史記 2010.02.12
27. ■ 劉 邦 과 項 羽(27) ■ 劉 邦 과 項 羽 劉邦은 約法三章을 선포하고 부하들에게 命令하여 秦나라 관리들과 함께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에게 자신의 뜻을 널리 알리게 했다. 이에 백성들은 환성을 올리며 패공의 군사들에게 고기와 음식을 가져왔으나 劉邦은 "저희들을 생각해 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민.. 司馬遷의 史記 2010.02.12
26. ■ 約 法 三 章 ■ 約 法 三 章 劉邦의 군사들이 咸陽에 入城한 다음 秦나라 조정의 창고들을 샅샅이 수색하자 眞貴한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秦王이 거주하던 阿房宮內의 휘황찬란함과 뛰어난 美貌의 宮女들로 넘쳐나는 현실을 보고 별 볼일없는 하급관리 출신인 그로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司馬遷의 史記 2010.02.11
25.■ 劉 邦 ■ 劉 邦 秦나라의 國內 사정은 승상 趙高가 쿠테타를 일으켜 2世 皇帝를 죽이고, 자영을 秦王으로 잇게하고, 패공 劉邦에게 趙高가 은밀히 사자를 보내 관중을 양분하여 통치하고자 하고 있었고 楚나라 項羽와 싸우던 장한은 戰勢가 크게 바뀌자 麾下 全將兵을 이끌고 項羽에게 투항하.. 司馬遷의 史記 2010.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