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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陸軍 女性義勇軍

義兵抗爭史 ■ 60. 陸軍 女性義勇軍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김현숙 초대 교육대장이 "나라의 위기에 여자라고 가만있을 수 없습니다. 여성 의용군을 모집하게 해 주세요." 라는 건의에 의하여 여성 의용군이 탄생하게 되는데 한국전쟁 발발 3달 뒤인 1950년 9월 1일, 정부는 초대 교육대장을 김현숙으로 여성 의용군 교육대를 창설했다. 제1기생 500명 선발에 2,000여 명이 응시하였고, 혈서를 쓰고 입대한 사람도 있었다. 여군 1만 명 시대에 진입한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피복과 신발, 모자 등은 남자용 중에서 작은 것을 골라 지급하였으므로 모두가 크서 몸에 맞지 않았고 모자는 흘러내려 눈이 가리는 지경 이어서 "인민군 포로 같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교육은 4주..

義兵抗爭史 2020.06.12

■ 59. 海兵隊 女性 義勇軍

義兵抗爭史 ■ 59. 海兵隊 女性 義勇軍 1950년 6월 25일 불법 남침한 북괴군 공세에 밀려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당시 제주도 주둔 해병대는 인천 상륙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교육을 강화하면서 제주도의 청. 장년을 대대적으로 모집하였다. 이때, 중학교 3학년 이상 어린 학생부터 6학년까지의 학생과 교사. 청년 등 3,000여 명은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였는데 중학교 3학년 이상의 여학생과 여교사들도 "조국 수호의 대의 앞에서 남. 녀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비장한 결의와 각오로 해병대에 자진 입대했다. 해병대 자원 입대자는 1기에서 4기까지 총 3,000여 명이었는데 50년 8월 5일, 제3기생, 50년 8월 30일, 제4기생 모집 시에는 청장년들은 대부분이 학생들이었고 이 중에 여자 의용군 126명이 포..

義兵抗爭史 2020.06.12

■ 58.學徒義勇軍 기억해야할 것들

義兵抗爭史 ■ 58.學徒義勇軍 기억해야 할 것들 「6·25 전쟁 중 學徒兵 戰死者가 가장 많은 학교는 어디일까?」 「문교부 통계]에 의하면 휴전까지 5만여 명 참전, 7,000여 명이 戰死로 기록되어 있는데,,,,, 전쟁기념관 6·25 전쟁실 학도병 코너에 전국 349개 중학교, 戰死者 1,976명 기록 동판이 걸려 있다. 이 자료는 1955년 문교부와 중앙 학도호국단에서 발간한 「無名전몰학도 학교 명단」에서 발췌한 것으로 동판에는 學徒兵 戰死者의 이름은 없다. 群山中 97명으로 전국 最多였고, 慶北中 53명으로 다음이었으며, 全州北中 52명, 慶州中 48명, 濟州 西歸浦 農業中 45명, 群山 商業中 45명, 淳昌 農林中 37명, 서울中 30명 順으로 戰死者 수가 기재돼 있었다. 學徒兵에 관해서 기억해야..

義兵抗爭史 2020.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