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어설픈 後繼者 諸葛恪 三國志 人間戰略 ■ 90.어설픈 後繼者 諸葛恪 三國時代는 諸葛氏의 活躍이 두드러진다. 蜀나라의 諸葛亮, 吳나라의 諸葛瑾,諸葛恪, 魏나라의 諸葛誕 等 모두가 그 나라의 政丞,宰相으로 重用되어 一門三方의 指導者였으니 天下가 이를 榮光으로 보았다. 諸葛瑾은 諸葛亮의 親兄으로 智略.. 三國志 人間戰略 2011.02.07
■ 89.蔣琬과 費褘 三國志 人間戰略 ■ 89.蔣琬과 費褘 當時, 國境 西쪽을 擔當하는 鎭西將軍 姜維는 軍事指導能力에 自信을 갖고 積極的인 軍事行動을 취하며 大軍을 動員하려 할때마다 費褘 는 姜維를 붙들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能力은 諸葛亮의 그것을 따를 수 없어. 그런 諸葛亮조차도 結局 中原.. 三國志 人間戰略 2011.02.05
■ 88.蔣琬과 費褘 三國志 人間戰略 ■ 88.蔣琬과 費褘 蔣琬의 뒤를 이어 宰相職에 오른 사람이 費褘다. 그는 蔣琬과는 달리 能動的이었으며 諸葛亮의 信任을 받고 크게 기대된 人物이다. 그가 積極性을 띄는 데 바탕이 된 것은 그의 銳利한 判斷力 때문이었다. 書類를 決裁할 때는 한번만 훓어보면 內容을 .. 三國志 人間戰略 2011.02.05
■ 87.蔣琬과 費褘 三國志 人間戰略 ■ 87.蔣琬과 費褘 그렇다면, 宰相이 된 蔣琬은 어떤 人物이었던가? 어느날 ,宰相府의 官吏인 楊戱를 불러 議論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똑똑하게 對答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양희를 謀陷하려는 어떤 사람이 고자질을 한다. 公께서 議論을 하자는데 입을 다물고 있으.. 三國志 人間戰略 2011.02.05
■ 86.蔣琬과 費褘 三國志 人間戰略 ■ 86.蔣琬과 費褘 蜀漢은 偉大한 指導者 孔明이 陣中에서 病死하여 國政에 틈이 생기게 되었다. 더우기 10餘年間 持續된 戰爭으로 피폐해진 國政을 어떻게 安定시키고 手拾할 것인가는 다음 後任者에 지워진 責任이었다. 이런 때에 課業을 이어받은 사람이 蔣琬이었고 .. 三國志 人間戰略 2011.02.05
■ 85.泣斬馬謖 三國志 人間學 ■ 85.泣斬馬謖 當時 蜀나라는 기산에서 出兵, 3郡을 연이어 탈취해 戰爭에 勝利할 可能性이 높았으나, 마속으로 인하여 街亭을 잃음으로써 結果的으로 한중으로 철군할 수 밖에 없었다. 하여,諸葛亮이 마속을 斬하려고 했을 때 蔣琬은 反對 입장을 밝혔다. 옛날 楚나라가 .. 三國志 人間戰略 2011.02.05
■ 84.泣斬馬謖 三國志 人間學 ■ 84. 泣斬馬謖 그렇다면 劉備와 諸葛亮이 馬謖에 대한 엇갈린 評價는 무엇때문이었을가? 그것은 서로 다른 人生經驗과 마속을 아끼는 마음의 차이에 있지 않나 싶다. 劉備는 一生을 피비린내 나는 戰爭터에서 살았기 때문에 才能과 智慧를 모두 實戰에서얻었다고 할 수 .. 三國志 人間戰略 2011.01.31
■ 83.泣斬馬謖 三國志 人間學 ■ 83.泣斬馬謖 事實 諸葛亮과 馬謖의 關係는 街亭의 不幸이 發生하기 前까지만해도 대단히 좋았다. 馬謖은 諸葛亮이 南쪽 정벌에 나섰을 때 天子의 命을 받들어 그를 위로하러 마중나온 적이 있었는데 이때 諸葛亮은 그의 재주에 感歎하였다. 하여,諸葛亮은 남만 정벌에 .. 三國志 人間戰略 2011.01.31
■ 82.泣斬馬謖 三國志 人間學 ■ 82. 泣斬馬謖 西紀228年, 1次 北伐時 諸葛亮이 사마의와 街亭에서 戰鬪를 치를 때였다. 馬謖은 스스로 出兵해 街亭을 지키겠다는 勇猛한 기개를 보였다. 그러나 諸葛亮은 그의 無謀한 勇猛함이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馬謖은 물러서지 않았다. 軍令狀을 주.. 三國志 人間戰略 2011.01.31
■ 81.欺瞞戰術의 名人 司馬懿 三國志 人間戰略 ■ 81.欺瞞戰術의 名人 司馬懿 그런데 仲達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태연히 도사리고 앉아서 孔明의 近況을 묻는다. 그때 使者가 諸葛公께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고 저녁에는 일찍 자리에 드시지요. 그리고 20대 以上의 태형에 해당하는 犯法者는 언제나 손수 調査.. 三國志 人間戰略 2011.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