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오르는 太陽 後金 ▣떠오르는 太陽 後金 ■1634년 12월, 홍타이지는 사실상 차하르를 비롯한 몽골 부락을 모두 복속시키고 1635년 몽골의 잔여 세력이었던 릭단칸의 부인 소태태후가 투항하면서 원제국의 옥쇄라 전해지는 국쇄를 홍타이지에 바치게 된다. 이에 홍타이지는 [진정 하늘이 내린 보물]이라 감탄.. 丙子胡亂 2016.09.04
▣丁卯胡亂 ▣丁卯胡亂 ■조선 조정은 황해도 이북의 방어선이 붕괴되자 전열을 다시 정비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도원수 장만과 부원수 정충신에게 평안도 지역의 패잔병과 함경도, 강원도 등지의 병력을 모아 임진강을 방어토록 하고, 총융사 李曙에게는 남한산성을 본거지로 삼아 下三道 군사를 .. 丙子胡亂 2016.09.04
▣丁卯胡亂 ▣丁卯胡亂 ■1627년 1월 13일, [아민]이 이끄는 3만의 후금군은 압록강을 건너 의주성으로 밀려왔다. 이들은 만주족,한족,몽골 출신의 다국적 군으로 조선출신 [강홍립]과 [韓潤]도 끼어 있었다. ■1월 21일, 후금군은 청천강을 건너 서울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방어 거점인 안주로 들이닥쳤.. 丙子胡亂 2016.09.04
▣丁卯胡亂의 要因 ▣丁卯胡亂의 要因 ■1626년 8월 11일, 누르하치가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나고 ■1626년 9월 1일, 그의 8째 아들 홍타이지가 뒤를 이어 심양 고궁에서 칸으로 등극한다. 강경파인 그가 칸이 됐다는 자체가 조선에는 재앙이었던 셈이다. ■1627년 1월8일, 홍타이지는 [아민]에게 조선을 정벌하라.. 丙子胡亂 2016.09.04
▣侵略을 부르는 引繼鐵線 ▣侵略을 부르는 引繼鐵線 ■ 반정을 통해 정권이 바뀐 이후의 불안정한 민심을 채 수습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괄의 난을 겪은 것이 자충수였다. ☞격변을 격으면서 민심은 크게 동요했고, ☞권력 지키기에 다급해진 인조 정권은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한 데다 ☞가도의 모.. 丙子胡亂 2016.09.04
▣이괄의 난 ▣이괄의 난 한편, ■1624년 2월 10일 새벽,이괄은 한양에 입성한다. 반란군이 서울을 점령한 것은 조선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괄은 경복궁의 옛 터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수원부사 이홍립도 그 안에 끼어 있었다. 한번 배신하면 계속 배신한다고 했던가? 인조 반정이 일어나던 .. 丙子胡亂 2016.09.04
▣이괄의 난 ▣이괄의 난 ■1624년 1월, 이괄은 휘하 1만 병력을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2월 1일, 黃州의 新橋에 접어들자 鄭忠信과 南以興이 이끄는 진압군이 막아섰다.그러나 검술과 조총술이 뛰어난 降倭軍 수백명을 선봉으로하여 반란군은 거칠 것 없이 남하했다. ■2월 8일, 임진강을 건넜다.. 丙子胡亂 2016.09.04
▣이괄의 난 ▣이괄의 난 ■ 부임지 영변에서 소식을 접한 이괄은 불만을 터뜨렸다. 반정 거사를 감행하던 당일의 상황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거사 성공 여부를 확신 못한 대장 김류는 미적거렸다. 주모자 김류는 2경에 延曙驛(지금의 은평구 역촌동)에 집결하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丙子胡亂 2016.09.04
▣이괄의 난 ▣이괄의 난 ■ 반정 성공 직후, 이괄은 가장 믿음직한 무장이었다. ■ 1623년 5월까지, 左捕盜大將에 임명되어 인조 정권 보위를 위한 전위대 역할을 했다. ■1623년 8월 16일, 인조는 서북 변방의 정세가 불온해지자 이괄을 副元帥로 임명,평안도로 내려보냈다. 그는 송별 석상에서 "신이 재.. 丙子胡亂 2016.09.04
▣인조반정과 崇明背金 ▣인조반정과 崇明背金 ■ 동북 대륙에서 후금이 건국하여 명나라에 선전포고하고 연전연성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을 즈음, 조선에서는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을 겪으며 불안정속에 있었다. ■1623년 3월 13일, 한 사람은 조선의 15대 임금 光海君, 다른 한 사람은 그의 조카 綾陽君, 조카.. 丙子胡亂 2016.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