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南 漢 山 城[14] ▣南 漢 山 城[14] "최명길"은 "김상헌"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임금을 향해 말했다. "예판이 화해할 수 있는 때와 화해할 수 없는 때를 말하고 또 성의 내실을 말하나 아직 내실이 남아있을 때가 화친의 때 이옵니다. 성안이 다 마르고 시들면 어느 적이 스스로 무너질 상대와 화친을 도모하.. 南漢山城 2012.12.28
▣13.南 漢 山 城[13] ▣南 漢 山 城[13] "최명길"은 더욱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판의 말은 말로써 옳으나 그 헤아림이 얕사옵니다. 화친을 형식으로 내세우면서 敵이 城을 서둘러 취하지않음은 城을 말려서 뿌리를 뽑으려는 뜻이온데, 앉아서 말라죽는 날을 기다릴 수는 없사옵니다. 안이 피폐하면 내실을 .. 南漢山城 2012.12.27
▣12.南 漢 山 城[12] ▣ ▣ 南 漢 山 城[12] 예조판서 "김상헌"이 손바닥으로 마루를 내려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아뢴다. "和親이라함은 國境을 사이에 두고 論할 수있는 것이온데 지금 저들이 大兵을 몰아 이처럼 깊이 들어왔으니 和親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심양"에서 여기까지 내려온 적이 빈손으로 갈리도 .. 南漢山城 2012.12.27
▣11.南 漢 山 城[11] ▣南 漢 山 城[11] 西門으로 들어온 "용골대"의 문서는 나흘만에 어전에 보고되었다. 승지가 읽기를 마치자 임금이 혼자말처럼 중얼그렸다. "적들이 답답하다는 구나" 이조판서"최명길이 헛기침으로 목청을 가다듬고 차분한 어조로 아뢴다. "전하, 적의 문서가 비록 무도하나 신들을 성 밖.. 南漢山城 2012.12.23
▣10.南 漢 山 城[10] ▣南 漢 山 城[10] 임금은 군병들의 언 몸을 덮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영의정은 전하, 신인들 어찌 가마니가 아니라 불화로 한개씩을 나누어 주고 싶지 않겠읍니까? 군병들에게 가마니를 나누어 준들 곧 젖고 썩어서 못쓰게 될 것이옵니다. 속히 거두어 말먹이로 쓰게 하소서. 병조판.. 南漢山城 2012.12.23
▣9. 南 漢 山 城[9] ▣南 漢 山 城[9] 한편, 수어사 "이시백"은 성안을 뒤져서 빈 가마니 1,000장을 서장대 마당에 거두어 놓았다. 거둬들인 가마니는 밤을 새우는 병사들이 깔고 앉아서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고, 눈 비가 올 때는 머리 위로 뒤집어 쓰게 하자는 것이었다. 바람이 맵고 응달진 곳에는 2장씩, .. 南漢山城 2009.04.20
▣8. 南 漢 山 城[8] ▣南 漢 山 城[8] 산성을 애워싼 적장 용골대는 성벽 가까이 왔다. 성 안에는 적이 다가왔어도 아무런 반응 없이 적막했다. 용골대는 손을 들어서 후속부대의 전진을 막았다 "괴이 하구나, 저것이 싸우려는 성이냐?" 조선인 통역사 <정명수>가 대답했다. "견디자는 것이지요" "견디어? .. 南漢山城 2009.04.20
▣7. 南 漢 山 城[7] ▣南 漢 山 城[7] 적군에 포위된 산성내에서는 엄동설한과 굶주림에 실로 비참한 하루하를 보내야만 했다. 예조판서 김상헌이 어전에서 고개를 들고 아뢴다. "신은 통곡으로 아뢰옵니다, 종친가 사대부들, 사찰 승려와 민촌 백성들에게서 여벌의 마른 헝겁쪼가리라도 거두어 병사의 언 발.. 南漢山城 2009.04.20
▣6. 南 漢 山 城[6] ▣南 漢 山 城[6] 적병이 송도에 이르자 놀란 조정은 파천하기로 하고, 종묘사직의 신주와 함께 대군과 빈궁을 강화도로 먼저 보내고, 인조 임금은 이튿날 오후에 출발했다. 旗麾가 앞서고 射隊와 儀仗이 어가를 애워싸고 백관과 궁녀와 노복들이 뒤따랐다. 유건을 쓴 선비들이 눈위에 꿇.. 南漢山城 2009.04.20
▣ 5. 南 漢 山 城[5] ▣ 南 漢 山 城[5] 1636년(인조14년,음력12월 9일, 청 황제 홍타이지는 용골대를 대장으로하여 20만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게 된다. 조선에서는 청나라의 실력을 우습게 여겼을 뿐만아니라 혹 그들이 쳐들어 온다하더라도 명나라가 구원해 줄 것이며, 또 조선의 가장 유능한 맹장인 임경업 장.. 南漢山城 2009.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