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戰 禍 5 ■100.戰 禍 5 國軍 第 1 軍團長 김백일 將軍, 首都師團長 송요찬 將軍은 10月 1日 38線을 돌파하여 10月17日에는 함흥을 점령하게 된다. 首都師團의 先頭部隊는 第18聯隊 1大隊長 이병형 中領이었는데 함흥을 점령하여 민가에 들어서니 기와집 기둥에 사람이 매달려 있어 다가가 보니 30歲가.. 韓國戰爭秘史 2011.08.02
■99.戰 禍 4 ■99.戰 禍 4 또한 事例는 大田에서의 일이다. 大田 刑務所에는 反共 人士들이 6,831名 수감되어 있었는데 共産黨과 人民軍은 大田을 철수 할 때 주로 쇠파이프와 몽둥이로 이들 反共 人士들을 모조리 때려 죽인 뒤 시신의 일부를 5개의 우물에 쳐넣었다. 이는 당시 형무소의 취사당번으로 .. 韓國戰爭秘史 2011.08.01
■98.戰 禍 3 ■98.戰 禍 3 ☞韓國軍 第1,第2軍團이 反擊을 開始하여 兄山江 渡河命令을 받은 第 3 聯隊 2大隊는 敵의 화망에 걸려 後退했다. 北傀는 경포로 파괴할 수 없는 엄개진지의 총좌에 사수를 묶어 놓고 화망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第3사단장 이종찬 將軍은 9月 15日 美軍이 仁川에 上陸했는.. 韓國戰爭秘史 2011.08.01
■97.戰 禍 2 ■97.戰 禍 2 ☞9月 16日,낙동강선에서 총반격을 개시하자 北傀軍의 第 1, 第 13 師團은 "다부동"과 "신령" 正面에서 백선엽 大領의 韓國 第1師團 공세를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었다. 백 師團長은 進出路上의 감제고지인 909 m의 "가산"에서 적 저항이 하도 심하여 야간 공격으로 돌격하여 반.. 韓國戰爭秘史 2011.08.01
■96.戰 禍 1 ■96.戰 禍 1 한편, 형극(荊棘)의 수난은 시민의 몫이었다. 26일 '반역자들을 처단하라'는 김일성의 명령은 방송을 탔으며, 7월 1일 박헌영은 "반역자들을 체포, 처단하여 인민들의 원한을 풀어 주라"고 선동했다. 9월 28일 서울을 되찾기까지 석 달 동안 '반동분자'로 지목된 이들은 거리 한복.. 韓國戰爭秘史 2011.08.01
■95.東部戰線에서의 總反擊 ■95.東部戰線에서의 總反擊 ☞國軍 第2軍團도 美 8 軍과 보조를 같이하여 反擊을 개시하였으며, 國軍은 美軍과 달리 순수한 步兵部隊였으나 차량화된 美軍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國軍 第6師團은 9月 25日 夜間에 "함창"에 돌입하였고. 9月 27日에는 험준한 소백산맥을 거쳐 문경- 충주로 .. 韓國戰爭秘史 2011.08.01
■94.中部戰線에서의 總反擊 ■94.中部戰線에서의 總反擊 9月 16日 09;00時 全 戰線에서 總反擊이 개시되었으나 폭우로 인하여 空中支援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였으며 아직 仁川上陸 소식이 北傀軍에게 전파되지 않은 탓인지 저항이 여전했기 때문에 反擊 첫날은 이렇다 할 成果도 없이 날이 저물었다. 9月19日까지도 敵의 저항이 완강하여 맥아더 將軍은 군산상륙을 준비시킬 정도로 전황이 부진하였다. 9月 20日이 되자 仁川上陸作戰의 효과가 나타나 敵의 氣勢가 꺾이기 시작하였고 9月 21 ~ 9月 22日 敵의 戰線을 거의 토막내다시피 하였다. 總 反擊의 主攻部隊인 美 第1기병사단이 맹렬한 기세로 공격하자 北傀는 눈사태처럼 무너졌고 9月 26日22;26分에 오산 北方 約 6km 地域까지 진출하여 上陸作戰部隊인 美 第10軍團 예하 第31聯隊와 .. 韓國戰爭秘史 2011.08.01
■93..我軍의 總 反擊計劃 要旨 ■93.我軍의 總 反擊計劃 要旨 美 第10軍團이 仁川에 上陸함으로써 北傀軍의 後方은 차단되었다. 이에 호응하여 美 第 8軍은 9月 16日 09;00 時를 기하여 現 洛東江線에서 北傀軍이 仁川으로 증원하는 것을 방지하고, 主力을 견제하기 위하여 全 戰線에 걸쳐 總反擊을 개시한다. 1,主攻은 美 .. 韓國戰爭秘史 2011.08.01
■92.백인엽 大領 ■92.백인엽 大領 9月 24日, 美 第10軍團長 알몬드 將軍으로 부터 白 大領이 지휘하는 第17聯隊를 美 第7師團에 배속하며, 9月 25日 아침 "서빙고"로 渡河하여 南山에서 東大門驛에 걸쳐 서울의 南岸을 탈취하고 나아가 京春街道를 차단하라는 명령을 받고. 안개가 자욱하게 낀 9月 25日 아침, .. 韓國戰爭秘史 2011.08.01
■91.백인엽 大領 ■91.백인엽 大領 신 장관은 안심하고 돌아갔는데, 그 날 석양 무렵, 大統領 비서인 황을수? 가 慰勞次 과일 바구니를 들고 찿아와 <내일 아침 6時 大統領께서 아침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고 하시니 일찍 와 주기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大統領은 신 장관의 물음과 같았고, 백 大領도 신.. 韓國戰爭秘史 2011.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