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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일에 집안싸움벌이는 막장나라

나라가 독립한 날, 과거의 상처를 스스로 들쑤셔 집안싸움을 벌이는 막장 나라는, 21세기 세계에서 정말 찾기 어렵다 선우정 부국장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현대사를 들여다봤다. 독립기념일을 202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광복절처럼 난장판으로 보내는 나라가 세상에 또 있는지 궁금했다. 찾다가 도달한 콩고에서 뜻밖의 장면을 접했다. 콩고는 몇 년 전까지 '아프리카의 세계대전'으로 불린 대규모 내전을 치렀다. 코로나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흑사병과 에볼라에 시달린다. 경제 규모는 한국의 3%도 안 된다. 지난 6월 30일은 콩고 독립 60주년이었다. 아프리카 독립기념일이라면 독재자를 위한 군사 퍼레이드부터 떠오른다. 하지만 콩고 정부는 행사를 생략했다. 아낀 비용을 코로나와 반군을 막는 용도로 돌렸다. 대..

카테고리 없음 2020.08.19

6·25 참전했던 몽클라르·맥아더 장군… 영웅과 작별하는 방법, 우리와는 달랐다

6·25 참전했던 몽클라르·맥아더 장군… 영웅과 작별하는 방법, 우리와는 달랐다 2차대전과 6·25 영웅 佛 몽클라르 땐, 드골 대통령이 직접 주관 몽고메리·맥아더·패튼 등 명예 기려… 무명 용사에도 최고 예우 프랑스 파리의 발 드 그라스 성당에는 6·25전쟁 영웅 랄프 몽클라르(본명 라울 마그랭베르느레) 장군의 묘가 있다. 묘비에는 '해방의 동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1·2차 세계대전에서 여러 공을 세운 몽클라르 장군은 6·25전쟁 발발 시점에는 육군 중장으로 전역한 상태였다. 그는 장군(중장)이 대대를 지휘한다는 것이 관례상 허용되지 않자 중령으로 계급을 깎아 참전했다. 그가 지휘한 프랑스 대대는 1951년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 공세를 막아냈고 이는 서울 재탈환의 계기가 됐다. 1964년 6월..

義兵抗爭史 2020.07.14

■ 끝. 이런 세상 보려고 싸웠나?

義兵抗爭史 ■ 끝. 이런 세상 보려고 싸웠나? 乘勝長驅하던 九月山 遊擊隊에도 悲劇은 있었다. 미군측에서 백령도 기지사령부 [버커] 隊長이 국군 장교였던 [김종벽] 대위가 유격대를 지휘하면 국군과 유격대가 연계되어 통할권에 문제가 생기고 [이정숙]이 미군에게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다 라는 이유로 [김종벽] 대위와 [이정숙]을 구월산유격대에서 추방시켜버렸다. 하여, 그녀는 강제로 육본에 소환당하자 불응하고 다시 구월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와 [김종벽] 대위는 휴가를 써서 다시 유격대 본부로 돌아가자 미군측에서는 그들이 유격대에 남아 있으면 모든 보급을 중단한다고 했고 결국 구월산유격대는 반란군이라는 누명으로 무장해제 당해 버렸고 유격대 대원들은 포로로써 거제도 수용소에 보내버리게 된다. 또 하나의..

義兵抗爭史 2020.07.04

스마트폰으로 영상만들기

스마트폰으로 사진작가처럼 찍어보기 1. 스마트폰으로 사진작가처럼 찍어보기 1편 – 사진 촬영의 기본을 말하다 2. 스마트폰으로 사진작가처럼 찍어보기 2편 – 시선을 멈추게 만드는 사진의 힘 ‘구도’ 3. 스마트폰으로 사진작가처럼 찍어보기 3편 – 특별한 인물사진을 찍는 손쉬운 방법 4. 스마트폰으로 사진작가처럼 찍어보기 4편 – 오늘은 내가 먹방 작가 5. 스마트폰으로 사진작가처럼 찍어보기 5편 – 내 일상 중 가장 황홀한 시간, 일출·일몰 6. 스마트폰으로 사진작가처럼 찍어보기 6편 – DSLR 부럽지 않은 아웃포커스 사진 7. 스마트폰으로 사진작가처럼 찍어보기 7편 – 영화처럼 분위기 있는 실루엣 사진 8. 스마트폰으로 사진작가처럼 찍어보기 8편 – 기억에 남는 여행지 풍경 9. 스마트폰으로 사진작가..

■ 60. 陸軍 女性義勇軍

義兵抗爭史 ■ 60. 陸軍 女性義勇軍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김현숙 초대 교육대장이 "나라의 위기에 여자라고 가만있을 수 없습니다. 여성 의용군을 모집하게 해 주세요." 라는 건의에 의하여 여성 의용군이 탄생하게 되는데 한국전쟁 발발 3달 뒤인 1950년 9월 1일, 정부는 초대 교육대장을 김현숙으로 여성 의용군 교육대를 창설했다. 제1기생 500명 선발에 2,000여 명이 응시하였고, 혈서를 쓰고 입대한 사람도 있었다. 여군 1만 명 시대에 진입한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피복과 신발, 모자 등은 남자용 중에서 작은 것을 골라 지급하였으므로 모두가 크서 몸에 맞지 않았고 모자는 흘러내려 눈이 가리는 지경 이어서 "인민군 포로 같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교육은 4주..

義兵抗爭史 2020.06.12

■ 59. 海兵隊 女性 義勇軍

義兵抗爭史 ■ 59. 海兵隊 女性 義勇軍 1950년 6월 25일 불법 남침한 북괴군 공세에 밀려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당시 제주도 주둔 해병대는 인천 상륙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교육을 강화하면서 제주도의 청. 장년을 대대적으로 모집하였다. 이때, 중학교 3학년 이상 어린 학생부터 6학년까지의 학생과 교사. 청년 등 3,000여 명은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였는데 중학교 3학년 이상의 여학생과 여교사들도 "조국 수호의 대의 앞에서 남. 녀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비장한 결의와 각오로 해병대에 자진 입대했다. 해병대 자원 입대자는 1기에서 4기까지 총 3,000여 명이었는데 50년 8월 5일, 제3기생, 50년 8월 30일, 제4기생 모집 시에는 청장년들은 대부분이 학생들이었고 이 중에 여자 의용군 126명이 포..

義兵抗爭史 2020.06.12

■ 58.學徒義勇軍 기억해야할 것들

義兵抗爭史 ■ 58.學徒義勇軍 기억해야 할 것들 「6·25 전쟁 중 學徒兵 戰死者가 가장 많은 학교는 어디일까?」 「문교부 통계]에 의하면 휴전까지 5만여 명 참전, 7,000여 명이 戰死로 기록되어 있는데,,,,, 전쟁기념관 6·25 전쟁실 학도병 코너에 전국 349개 중학교, 戰死者 1,976명 기록 동판이 걸려 있다. 이 자료는 1955년 문교부와 중앙 학도호국단에서 발간한 「無名전몰학도 학교 명단」에서 발췌한 것으로 동판에는 學徒兵 戰死者의 이름은 없다. 群山中 97명으로 전국 最多였고, 慶北中 53명으로 다음이었으며, 全州北中 52명, 慶州中 48명, 濟州 西歸浦 農業中 45명, 群山 商業中 45명, 淳昌 農林中 37명, 서울中 30명 順으로 戰死者 수가 기재돼 있었다. 學徒兵에 관해서 기억해야..

義兵抗爭史 2020.06.12

■ 57. 北進 砲兵隊

義兵抗爭史 ■ 57. 北進 砲兵隊 1950년 10월 15일, 서울 용산중학교 교정에서 341명 학도들이 [북진 포병대]를 조직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머리를 빡빡 깎은 15~16세 되는 어린 중학생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대학생도 끼어 있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패주 하는 적을 추격하던 국군은 어느 정도의 포를 공급받았지만 포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그러나 부족한 포병은 일정한 지식과 기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일반병 중에서 아무나 차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여, 7사단 포병단 제18포병대대 학도의 용 포병 모집 공고를 하였는 바, 적 치하에서 3개월간 숨을 죽이고 울분을 참아왔던 학도들은 돌파구를 찾은 듯 서울시내 26개 중학교에서 지원자가 몰려들어 시험을 거쳐 선발된 인원은 용산中..

義兵抗爭史 2020.06.11

■ 56. 長沙洞 上陸作戰

義兵抗爭史 ■ 56. 長沙洞 上陸作戰 8월 하순, 대구에서 학도 의용대에 지원하여 密陽에서 창설된 유격대에 편입된 학도병 697명이 9월 8일, 육본 전투명령에 의거 부산으로 내려왔다. 이들 학도는 육군본부 독립 유격대 1대대 요원들로서 대대장 [李明欽] 大尉의 이름을 따 일명 [明 部隊]라 불렀던 학도 특공대는 9월 10일, 경북 영덕군 남정면 長沙里上陸命令이 내려졌다. 이 작전은 연합군의 총반격 돌파구를 9월 15일 인천 상륙작전을 위한 양동작전으로 마련된 것으로 이미 포항 근처에 布陣하고 있던 북괴 제5사단과 제12사단의 배후인 장사동에 상륙한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자 막중한 임무였으므로 육군본부 작전국 담당관들도 학도 특공대들이 살아 돌아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9월 13일, 영국 구축함 1..

義兵抗爭史 2020.05.23